언젠가 때가 되면 필요에 따라서 공부를 하려고 마음 먹고 있습니다.
그 마음을 먹은게 7년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의레 제가 '신학'을 할거라고 생각하시지요. 전 늘 비영리단체 경영쪽이나, 목회학을 사이에 두고 저울질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기회가 되면 목회학보다 더 신학적 공부를 하고 싶었지요. 한국이 아닌 곳에서 많은 경험들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교회 스탭을 사임할 때도 가장 많이 퍼진 소문은 '공부하러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아직 공부할 소양과 능력이 되는 것으로 봐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퍽 다행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주어진 일들로 인해 그것은 늘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찌보면 교회 사역을 좀 더 진득하게 한다면 '더 좋은 기회(?)'가 왔을거라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기회들을 뒤로 했습니다. 결코 그것은 자랑도 명예도 아니지요.
다만 제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가고자 하려 하루하루 한선택 한선택을 합니다. 지금은 단순히.. 때가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며 사회적 책임감과 주변인들에게 더 베풀고 넉넉한 사람으로 서야 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자녀에게도 또한 그렇습니다. 영적인 그리고 실질적인 유산들을 통해 누리고 나누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들 말입니다. (이것이 아주 많이 쌓아놓고 나누자는 그런 류의 이야기가 아니지요)
30대 초에는 석사가 아니고 목사가 아니어도 실력과 열정을 귀엽게 봐주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30대 말이 되니 사람들의 시선이 참 곱지 않네요.
지난주 토요일에는 한 모임에서 존경하는 목사님을 오랫만에 뵈었습니다.
그분께서 뭐하냐는 질문에 교회 스탭 사임했다고 하니 '찬양사역' 많이 하려고 하냐고 하시더군요.
특별히 긴 이야기를 짧게 드리기 어려워 그랬다고 하니... 그 다음 질문은 '신학 했냐' 였습니다. 하지 않았다고 하니 대화가 중단되었고 재목감이냐 아니냐의 어떤 기준에서 순간 탈락한 걸 알았습니다^^
그 순간 제 스펙 검열을 당한 느낌이 들면서 서글펐습니다. 제 자신이 초라하단 생각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질문을 그분께 들어서 슬펐지요.
발길을 돌려 동문모임에 잠깐 참석했습니다.
총장님, 부총장님, 여러 교수님들... 그리고 후배들... 동기들...
명함을 들고 다니지 않기에 인사나누기가 좀 어려웠습니다. 어여 명함도 만들어야 하고...
교회 간사가 아닌 적절한 뭔가를 만들어야 대화가 되는 걸 깨달았지요.
동문모임에서 3곡을 불렀습니다.
"당신은 고난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고백, 또 하나의 시23편', '내가 들어갈 문, 가야할 길'
이 세곡이 함의하는 바를 후배들은, 보직교수님들은 과연 얼마나 공감할 수 있었을까요.
제가 몸담은 학교에서 저는 그런 가사를 몸소 체험했습니다.
하나님나라신학에 대한 것도 대학시절 바로 그곳에서 깨닫고 도전받고 느낀 것이었습니다.
실은 누가 가르쳐주어서가 아니라 치열하게 고민하던 친구들로부터 도전받았고
아주 소수의 몇몇 교수님들의 가르침에서 도전받았던 것입니다.
실은 졸업한 학교가 실제로 가르쳐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조차도 은혜로, 감사함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제가 부른 3곡. 그리고 그 대상들 앞에서 부른 3곡은
저 자신을 오히려 치유하고 저 자신을 더 가다담게 만드는 노래들이었습니다.
의연함... 그리고 때를 기다림... 묵묵함... 제자도...
하나님나라... 본받음 그리고 본을 보임...
이와 같은 것들을 생각하는 하루였습니다.
다소 자조적인 노트네요. 그러나 모두에게, 각자에게, 무엇보다 제게 의미있는 노트입니다.
제가 만약 신학을 한다면, 목회학을 한다면... 치사하고 타이틀이 필요해서가 아닐 것입니다.
정말 공부의 필요를 느껴서일 것입니다. 그 타이틀이 제겐 아직 과분합니다.
헌신하며 그 길을 먼저 가신 분들께 존경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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