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살아숨쉰다
-공동체가족의 날을 준비하면서

본 글은 제가 편집인으로 있는 나들목교회 정기간행물 '도시락'에 실은 최근 글입니다. 교회 행사 <공동체가족의 날>을 준비하면서의 과정과 느낌들을 담은 글입니다.

#1
나들목과의 인연이 꽤 깊다. 2000년 즈음 나는 신촌에서 커피장사를 하고 있었다. 실인즉 다니던 회사에서 큰 재정이 생겨 기독교문화사업을 하기로 했고, 나는 기획실장으로서 신촌에 5층짜리 건물을 임대하여 2층은 기독서점위탁운영, 3층은 교회관련 아카데미운영, 4층은 기독교소그룹모임방, 5층은 음악공연이 가능한 카페테리아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와중이었다. 그곳의 이름은 이름하여 ‘꿈.이.있.는.뜰’이었고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드너들었다. 민들레영토의 소그룹방도 실은 ‘꿈.이.있.는.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셈이다. 그 때 처음 뵌 분들은 고직한, 김영표, 김관영, 김수형, 최성문, 서지성, 황인주…… 지금 나들목에 계신 분들이다. 한두분이 교회를 개척한다고 대귀형제도 같이 오면 좋겠다고 아주 가볍게 말씀하셔서, 나도 아주 가볍게 ‘섬기던 교회를 섬길께요’라고 답했다. 얼마후 그 교회가 개척했다. 바로 나들목교회다. 중간에 개인 앨범 ‘가난한자가 들어간다’를 발표했을 때 날 취재했던 첫번째 기자는 당시 뉴스앤조이의 기자인 양정지건 형제였다. 황병구, 조준모, 김영표 등과의 인연으로 공연장을 찾았던 곳은 정림 지하2층 공간이었다. 그렇듯 나들목은 꽤나 익숙하고 친숙한 곳이었다. 시간이 흘러 2004년 처음으로 대광에 장막을 꾸린 나들목을 방문한 것은 12월 첫주 수요공동체예배였고, 2005년부터 사역자로 오게 되면서 나들목을 경험할 기회가 필요했다. 그래서 참석한 모임이 바로 12월 마지막주에 있던 ‘공동체가족의밤’ 시간이었다. 예능관 지하에서 열린 공동체가족의밤 행사를 보며 나들목의 역동성과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고, 한 꼭지 한 꼭지 속에 담긴 나들목 사람들의 신앙과 열정에 감동과 도전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2
2005년 공동체 가족의 날은 보조로 섬기면서 몇 개의 꼭지들을 맡았지만, 2006년부터는 매해 공동체가족의 날을 거의 도맡아 기획하고 진행해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들목의 역동성과 한해의 감사제목과 기도제목을 고스란히 체현하고 소화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은 한편으로 큰 부담이자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더욱 기도하라고 더욱 공동체 한사람 한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라고 주신 귀한 기회였던 것이다. 공동체가족의 날을 준비할 때면 한없이 힘들고 외로울 때가 있다. 봉사자를 잘 개발, 계발하지 못하는 성격과 기질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수없이 밀린 일들 가운데 큰 행사를 치르다보니 임박해서 일을 착수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다보면 급한 상황에서 성도들에게 부탁하자니 늘 미안하고, 부담주기 싫어서 이런저런 일을 혼자 해버리곤 했던 것 같다. 공동체를 말하는 시간에 정작 나는 홀로 많은 것을 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던 것이다. 그렇게 2006년, 2007년 행사들을 하자 더 이상 공동체가족의 날 행사를 맡는 것이 너무도 힘들고 버거운 일이 되어버렸다. 돕게다고 하는 사람조차도 잘 활용하지 못하고 결국 막판에 혼자 꾸역꾸역 밤을 새며 이것저것 했던 바보 같은 시간들… 행사 자체의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많은 사람이 참여하게 하는 것에서는 후한 점수를 받지 못했던 것 같다. 2008년에는 감사하게도 많은 도움의 손길들이 있어서 사역자그룹과 평신도그룹이 적절하게 섞여 깔끔하고도 감동적이며 담백한 행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구원의 손길이 있었으니 바로 ‘십장생 가무단’이다. 강영동 선생님의 헌신과 많은 윗세대의 참여로 이루어진 시간을 통해 공동체가족의 날 행사의 백미가 되었다.


#3
이제 관록이 붙어서 그런지 공동체가족의 날 정도의 행사는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매너리즘이 가장 무서운 법. 2009년 공동체가족의 날은 어떠했을까? 아쉽게도 언약가족디딤돌 진행과 축제의 밤 준비에다 연말 평가와 새해계획하는 시간들과 겹치면서 공동체가족의 날 준비가 늘 뒷전이었다. 그나마 이번에도 구원투수가 있었으니 그것은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 가족도서관에서 열렸던 이 뮤지컬을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도록 각색하여 30분짜리 공연을 행사 중에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내용적인 측면과 이런저런 콘텐츠의 나열 그 이상의 그 무엇이 나에겐 필요했다. 바로 ‘공동체가족의 날을 하는 이유와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내 안에 강렬하게 필요했던 것이다. 해마다 하는 행사. 늘 나는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는 시간’이라고 정의하고 이 행사를 준비하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내 가슴 한켠에 있던 갈망과 어울어져 하나님께 더 근본적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 이 행사를 통해 무엇이 드러나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까요?”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그 대답을 바로 언약가족예배와 마을별 주일예배 현장에서 주셨다. 마을별로 흩어져 예배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 그리고 언약가족들이 성찬에 참여하며 하나님께 집중하며 나가는 모습을 보며 ‘바로 저거다! 나들목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야 한다!’라는 강렬한 통찰을 얻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나를 타격하시고 비로소 나는 꿈뜬 몸을 움직여 일에 착수할 수 있었다. 항목상 프로그램에 불과했던 한줄 한줄이 내게는 소중한 보물처럼 다가왔고 공동체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초대를 하고, 회유와 협박(?)과 권면을 할 명분을 갖게 되었다.

#4
‘공동체가족의 날’을 마치 내가 다 만든 것처럼 표현해와서 가족들에게 죄송하다. 결코 그건 사실이 아님을 아실 것이다. 공동체 안에 숨쉬는 인생들의 삶과 이야기와 고백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그리고 그들의 참여와 관심과 기도가 없었다면 어떻게 이 행사가 치러졌을까? 나는 나들목 가족들의 한순간 한순간의 헌신과 고백의 이벤트(event)들이 쌓여와서 지금의 운동(movement)을 일으키고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예배와 기도와 간구가 한해를 돌아보는 작은 행사에서 초롱초롱 빛나는 것일뿐, 이 행사의 주연은 결코 소수 개인이 아니다. 바로 우리이다. 그렇다. 나들목은 살아있다. 우리가 늘 부르는 노래처럼 ‘살아 숨쉬는 교회’인 것이다. 누가 나들목이 침울하다고, 지쳤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전히 하나님의 역사는 살아 숨쉬는 교회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데, 그건 다만 오랜 신앙생활, 나들목 생활을 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진 나 같은 사람들이 푸념으로 가끔 하는 말들이 와전된 것일게다. 마음을 새롭게 할 일이다.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를 다시 바라볼 일이다. 나들목은, 그리스도의 교회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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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감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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